2008년 06월 23일
나는 '굴욕' 이라는 말을 들으면,
[카노사의 굴욕] 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걸까.
세계사 진짜 못했는데.
난 역사에 관한 공부를 못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죽어도 못 읽는다.
중학교때 배운 그 단어가 이렇게 깊게 새겨진 까닭은 무엇일까?
(누가 보면 공부 킹왕짱 잘한 줄 알겠네)

황제가 맨발로 눈 속에 서서 꼬박 3일 밤낮을 울며불며 애원한 끝에
못이기는 척하고
와...교황 너 보통이 아니다?
츤데레는 11세기에도 존재했구나.
교황 좀 짱인듯.
[굴욕의 원조, 카노사의 굴욕(Humiliation at Canossa)]
중세 유럽 사회의 신분서열을 묘사한 책을 보면, 사회신분을 총 24가지로 나누어 그 첫번째는 하나님, 두번째는 교황, 그 다음은 수도원장, 이하 사제와 교회 관계자들이 차지하고, 황제는 일곱번째, 국왕은 여덟번째, 영주는 열번째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열의 가장 끝에 있는 것은 유대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카톨릭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고, 교회의 정점에 있는 교황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막강했다. 교황은 유럽 여러 나라의 왕 또는 황제와 손잡거나 상호견제하면서 유럽 사회 전체를 이끌어나갔다.
그러나 교황의 권위와 세력이 처음부터 막강했던 것은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1077년, 교황이 황제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다.
[성직임명권을 둘러싼 싸움]
당시 교회는 성직자들의 부정부패와 타락으로 교황 및 성직자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1073년 58세의 나이로 새로 교황에 즉위한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성직자의 결혼이나 성직 매매를 일절 금지하고, 그때까지 국왕 및 제후가 갖고 있던 성직 임명권을 교황이 갖겠다고 공포한다. 성직자를 세속의 왕이나 제후들이 임명하기 때문에 교회가 타락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레고리는 영국왕 윌리엄 1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도
'조물주는 하늘에 두 빛을 달아두시므로 만물을 비치는 것처럼 땅에는 두 큰 권력을 세우시므로서 만민을 지배하여 잘못된데 빠지지 않게 하신다. 이 두 권력은 교황과 국왕이다. 교황은 큰 빛이고 국왕은 작은 빛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아래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도의 권력이 국왕의 권력을 지배하는 것으로 정해져있다.'
라 이르는 등 앞으로는 교황권이 황제권 위에 군림될 것임을 천명하였다.
교황이 이러한 포부를 실행하려 하자 많은 지상의 왕들은 이에 반발하였고, 이들 서로간의 충돌은 불가피 할수 밖에 없었다. 특히 통일국가가 아닌 느슨한 연방 성격의 독일제국으로서는 그레고리우스 7세의 무리한 정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실정이었는데, 제국내 토지의 절반이 교회 감독과 회당장의 소유였으로, 정책 실행 후 그들이 차후 황제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교황을 따르게 된다면 독일제국의 주권은 자칫 붕괴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직 임명권을 넘겨준다는 것은 카톨릭 사회에 대한 황제의 지배권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당시 독일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하인히리 4세는 결코 이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이후 카톨릭 사회의 주도권을 둘러싼 교황과 황제의 일대 결전이 벌어지게 된다.
교황은 먼저 하인리히가 그간 악정으로 제후들의 반심을 사고있는 것을 이용하여 이들을 선동, 독일제국에 권위를 행사하여 하인히리에게 자신의 잘못을 로마에 와서 친히 해명할 것을 명령하였고, 차후 조치로 하인히리가 가장 신임하고 있던 감독을 관직매매에 의한 지위라 하여 영구파문하였다. 하인리히는 이러한 교황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고, 1076년 1월, 보름스에서 제국국회를 소집하여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폐위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후 교황에게 이 같은 사실을 '지금은 교황이 아닌 거짓수도자인 힐데부란트에게'라는 제목의 서신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지한다.
교황은 같은 해 2월에 회의를 소집하여 하인리히를 파문함과 동시에 폐위할 것을 발표하고 독일 국민은 그에게 충성을 다할 의무가 없음을 선언하였다. 파문이라 함은 카톨릭 세계로부터의 완전 추방을 뜻하는 매우 치명적인 조치로서, 카톨릭 교도는 더 이상 황제를 만나서는 안 되었으며, 하인리히 4세에게 충성을 바치는 제후는 그와 똑같이 불경한 자로 간주되었다.
하인리히 4세는 몰래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꽁꽁 얼어붙은 라인 강을 건너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었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교황은 그때 토스카나 백작 부인 마틸다의 카노사 성에 머물고 있었다.
고생 끝에 간신히 도착한 하인리히 4세였지만 교황은 만나주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황제는추운 겨울날 얇은 옷에 맨발로 눈 속에 서서 꼬박 3일 밤낮을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제야 교황은 접견을 허락하고 교회에 복종할 것을 서약받은 다음 파문을 취소해 주었으니, 이 사건을 일컬어 '카노사의 굴욕' 이라 한다.
하인리히 4세 지못미 ㅋㅋㅋㅋㅋㅋㅋ
# by | 2008/06/23 10:11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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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놋사의 굴욕! 시옷소리를 붙이면 더욱더 감칠맛 나는 카노사의 굴욕...
하악하악 링크 업어가긔
츤데레 교황님 솜쌍~